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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의 2번출구] ‘혁신’이었던 2층 고속열차의 쓸쓸한 퇴장

세계 최초 2층 고속열차 운행했던 일본, 10월 1일로 모두 퇴역

박장식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10/21 [15:57]

[박장식의 2번출구] ‘혁신’이었던 2층 고속열차의 쓸쓸한 퇴장

세계 최초 2층 고속열차 운행했던 일본, 10월 1일로 모두 퇴역

박장식 객원기자 | 입력 : 2021/10/21 [15:57]

=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 철도와 관련된 비사를 꺼내는 <박장식의 2번 출구> 연재가 진행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철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미래의 철도 정책 등에서 배울 점,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철도경제신문=박장식 객원기자] 세계 최초로 2층 고속열차를 운행한 일본에서 그 ‘2층 신칸센’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JR동일본은 2층 신칸센으로 운행을 지속했던 ‘Max 타니카와’, ‘Max 토키’ 등 열차의 운행을 10월 1일부터 중단하면서, ’Max’ 열차로 운행했던 E4계 신칸센의 정기 운행 역시 멈추었다.

 

이로써 1989년 2층 객차 첫 편성, 그리고 1994년 모든 객차가 2층으로 이루어진 E1계 신칸센의 영업 개시 이래 32년이라는 세월을 지속해왔던 ‘2층 신칸센’은 정기 영업을 중단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운영사 JR동일본 역시 도쿄역 에스컬레이터 등에 마지막 운행을 알리는 광고를 부착하고, 10월 1일을 기념해 라스트 런 행사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90년대를 풍미했던 열차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함께 기념했다.

 

프랑스의 고속열차 TGV 듀플렉스보다 2층 객차가 딸린 열차의 운행은 7년이 빨랐지만, 현재도 ‘간판 열차’로서 프랑스 전역, 나아가 유럽 각 나라들을 누비는 TGV 듀플렉스와 달리 ‘MAX 신칸센’은 27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만을 운행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일본에서 ‘2층 신칸센’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일본 오미야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E1계 선두부. 최초의 '2층 신칸센'이었던 차량은 20년만에 철도 박물관으로 향하는 운명이 되었다  © 박장식 객원기자

 

▶ ‘고급화’에서 ‘수요 증대’까지, ‘뚱보 신칸센’의 등장

 

이른바 ‘2층 고속열차’가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한 것은 1989년이었다. 당시 신칸센은 항공기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경쟁을 위해 신칸센의 서비스를 향상할 계획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그랜드 히카리’였다. 

 

12량 규모의 기존 100계 신칸센에 2층 객차 4량을 편성한 그랜드 히카리에는 식당차와 특실, 매점과 업무 공간 등 고급스러운 탑승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일부 객차에 2층 객차를 장착했다. 이는 물론 공급 좌석을 늘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승객에게 편안한 여행의 경험을 주기 위한 목적이 더욱 컸다.

 

본격적으로 ‘수요 증대’를 위한 2층 신칸센은 1990년대 등장했다. 당시 신칸센은 수요 폭증에 따른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출장, 나들이 등 장거리 이동 수요는 물론, 신칸센을 이용하면 빠르게 도쿄 등 대도시로 향할 수 있는 지역에서 통근과 통학을 하는 수요 역시 많았기 때문. 특히 간토 지역에서는 신칸센의 공급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열차의 길이를 무한정 늘이기도 어려운데다, 특히 간토 지역의 신칸센은 도카이도 신칸센과는 달리 도호쿠 신칸센과 죠에츠 신칸센 등의 신칸센 노선이 도쿄 일대의 신칸센 선로를 함께 쓰고 있어 철도편을 늘리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좌석을 최대한 많이 공급할 방법은 철도 차량의 한계를 끝까지 키워 한 열차에 최대한 많은 승객을 싣는 방도였다. 이른바 ‘2층 열차’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1994년 E1계 신칸센 차량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12량 규모의 기다란 열차는 모든 객차가 2층으로 구성되어 마치 커다란 장벽이 움직이는 듯 했다.

 

수송력만큼은 높았다. 12량 한 편성당 1,235명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같은 수의 칸을 가진 기존 신칸센에 비해 무려 40%를 더 태우는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모든 객차가 2층으로 구성된 덕분에 4m가 훌쩍 넘는 크기의 E1계 신칸센은 도호쿠 신칸센, 죠에츠 신칸센에서 운행하며 일본의 북쪽과 도쿄를 잇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별명이 ‘하마’라고 붙여지기도 한 이른바 ‘Max’ 신칸센은 명물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자유석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고, 나들이객은 더욱 전망이 잘 보이는 2층에서 풍경을 즐기곤 했다. 1997년부터는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강화하고, 중련 운행이 가능해 유연한 운용을 할 수 있는 E4계 신칸센이 운행을 시작하면서 2층 신칸센의 ‘전성기’를 열었다.

 

▲ 10월 1일로 정기 운행을 마감한 2층 신칸센 E4계의 모습.  © Wikimedia Commons MaedaAkihiko

 

▶ 시설 불편하고, 느리고…

 

하지만 2층 신칸센은 적지 않은 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장 먼저 속도가 느렸다. E4계의 영업 최고속도는 240km/h. 도호쿠 신칸센의 설계 최대 속도가 320km/h, 죠에츠 신칸센이 275km/h로 증속 계획을 세웠던 만큼, E4계의 속도는 다른 열차에 방해가 될 정도로 느렸다. 

 

심지어 차체가 무거워 열차의 가속력마저 느렸던 탓에 다른 열차에 비해 최고속도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더욱 많이 들었다. 열차의 정시성은 물론, 시간표를 짜기에도 애로사항이 컸다.

 

그런 열차가 승하차 시간마저 느렸다. 2층과 1층에는 계단이 있어 승하차하는 승객들이 계단을 타고 오르내려야 했다. 그런 탓에 출발 시간 지연이 발생하는 일도 잦았고,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고속열차를 이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이런 문제 탓에 보통은 25년을 넘어 30년까지 쓰이는 신칸센 차량의 기령이 무색하게 ‘2층 신칸센’의 퇴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2년 E1계 신칸센이 운행을 마치고 퇴역한 뒤 철도박물관에 전시되는 신세가 되었고, E4계는 비슷한 시기 토호쿠 신칸센에서의 운행을 모두 중단했다.

 

2017년부터는 최고속도가 비교적 느렸던 죠에츠 신칸센에서도 새로운 열차의 도입이 속속 시작되면서 퇴역설이 나돌았다. JR동일본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열차인 E7계가 도입되는 대로 E4계를 정기 운용에서 제외하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재미있는 것은 E7계가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사건으로 인해 E4계의 수명이 연장되는 일이 벌어졌다. 2019년 태풍 하기비스의 상륙으로 벌어진 홍수로 인해 E7계 신조차 120량이 침수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해당 열차가 모두 폐차되는 일이 벌어졌다. E4계는 차량 부족으로 인해 예정 퇴역 시기보다 약 2년을 더 운행할 수 있었지만, ‘대세’를 막기는 어려웠다. 

 

결국 JR동일본은 2021년 E4계의 정기 운용 중단을 공식화하고, 10월 1일부로 정기 운용에서 제외했다. 90년대 일본을 대표했던 ‘하마 신칸센’이 퇴장하는 순간이었다. 

 

▶ 2층 KTX 꿈꾸었던 한국에 시사하는 것

 

어쩌면 한국에도 ‘2층 신칸센’의 퇴장은 시사하는 것이 많다. 한국에서도 의욕적으로 2층 KTX를 위한 도입 사업에 공을 들였고, 실제로 차량이 만들어져 시범 운행을 거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근교형 열차인 ITX-청춘에서도 2층 객차가 지금까지 손님을 실어 나르니 말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프랑스의 TGV 듀플렉스를 오마주한 2층 KTX를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2층 신칸센의 퇴장에서 보듯이, 2층 KTX를 운행하는 데에는 ‘속도 및 편의’와 ‘수송량’ 사이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2층 KTX가 실현되지 못한 것에도 신칸센과 비슷한 문제가 배어 있다는 것은 이러한 도전의 어려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철도 시스템에서 혁신적인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도 ‘2층 신칸센의 도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일본의 90년대 교통 시스템의 가장 큰 변곡점은 2층 신칸센의 등장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할 새로운 모습이 나타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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