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전현우의 플랫폼] 열차와 마스크

전현우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10/21 [19:44]

[전현우의 플랫폼] 열차와 마스크

전현우 객원기자 | 입력 : 2021/10/21 [19:44]

= 각기 다른 사정과 목표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단 한 편의 열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매일같이, 거대 도시와 광역망, 전국망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이 사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 사실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역사·지리·경제·공학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철도가 이들에게 다시 돌려준 것들을 살펴보는 것. 바로 <플랫폼>의 목적이다 =

 

[철도경제신문=전현우 객원기자/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사변이 길었다. 지옥철을 함께 타고 가던 동료 시민들이 열차를 우르르 빠져나가자, 당신의 몸은 드디어 주변 사람들의 흔들림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신세를 벗어난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백여명의 동료 시민들은, 당신과 아주 중요한 것을 공유한다. 바로 열차 내부의 공기이다. 

 

감염병이 습격하기 전, 이 사실은 비교적 사소한 사실처럼 보였다. 물론 공기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냉난방 온도의 형태로, 객실 특유의 냄새로, 그리고 누군가의 실수로 발생한 악취로 당신에게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나 호흡기로 감염되는 감염병 앞에서, 이 사실은 아주 치명적인 것으로 돌변한다. 당신은 당신 주변을 떠다니는 병원체들에게 점막을 열어놓고 있고, 병원체는 이 점막을 아주 쉽게 뚫고 당신을 감염시킬 수 있다. 

 

모든 조치를 성실히 수행했더라도, 한 순간만 방심하면 당신은 감염될 수 있다. 으스스한 가능성 앞에, 당신의 스트레스는 치솟는다.

 

▲ “어? 입보이면 밉보여요!” 녹사평에 부착된 서울교통공사의 포스터. 2021년 10월 19일.  © 전현우 객원기자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당신과 같은 칸에 탄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은 이런 방송을 한다. “마스크 미착용 승객께서는 다음역에서 하차 후 마스크 구매 후 다시 열차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시 마스크를 대충 쓴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코를 내놓았을지, 아니면 마스크를 내려 쓰고 있었을지… 당신은 혀를 차며 당신의 휴대 전화만 하릴없이 만지작거릴 것이다. 

 

잠시 시계를 2년 정도 되감아본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 정부가 마스크 배급을 하기 직전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나는 집을 아무리 뒤져도 마스크를 찾을 수 없었다. 출근에 너무 늦어버리긴 곤란하니, 마스크를 포기하고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집이 있는 인천에서는 무언가 따가운 눈길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길에 흔한 이상한 사람 한 명이 더 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그 날, 마침 일이 있어 방문했던 동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동탄역에서부터, 눈길은 아주 싸늘했다. 인간 쓰레기를 보는 혐오스러운 눈빛이었달까. 다행히 그 날 만났던 동료에게 마스크를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앞 절에서 확인했던 사변을 여기서도 다시 활용해 볼 수 있다. 그 날 나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동료 시민이 아니라 상대의 점막을 침탈할지 모를 독기를 내뿜는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둔감하지 않았고,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아마 오늘의 열차에서도 이렇게 주변인에게 무관심하지 않았던 사람이 나온 것 같다. 

 

안 그래도 제대로 다니기 어려워 스트레스는 높은데, 괴인의 무신경한 얼굴까지 보니 아마 그는 참지 못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듯 하다. 

 

“마스크 미착용 승객께서는 이번역에서 하차 후 마스크 구매 후 다시 열차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짜증섞인 차장의 목소리가 열차를 메운다. 문제의 인물이 열차에서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다시 열차는 달린다. 

 

이렇게 열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당신과 모두의 점막을 객실 내를 떠도는 침방울로부터 보호하는 마스크 덕이다. 마스크가 품귀 상태였던 2020년 4월, 열차 수요는 곤두박질쳤다. 

 

급한 일이 있어 이용했던 KTX는 같은 칸에 오직 나만 태우고 부산까지 달렸다. 고글까지 착용해 마치 옛적 비행사처럼 보이던 승무원은 비장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각막 역시 점막인 만큼 승무원의 우려는 올바른 방향이었을 것이다. 

 

이런 우려는, 그러나 의학계에서 있었던 혼선 덕에 잠시 빛이 바랬다. WHO는 2020년 봄 마스크 착용을 강하게 권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스크가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 감염을 저감시킨다는 대조 시험 데이터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른바 사전 예방 원칙에는 어긋나는 조치처럼 보인다.  

 

어떤 위험에 대응하는 조치가 특별히 해를 끼칠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문제의 위험을 저감한다고 볼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다면 이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이 원칙은, 아직 충분한 수준의 역학(ephdemiology) 연구가 없다는 이유에서 무시되고 말았다. 

 

때로, 재빠른 직감이 둔하게 진행되는 분석적 사유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사람들이 시장에서 동이 날 정도로 마스크를 사 모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현상의 한 사례로 보아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의 그 직감, 우려 덕분에, 열차는 다행히 감염의 배양실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쓴 당신을 실은 열차는 다시 다음 역을 향해 속도를 올린다. 

 


* 전염병이 아니라 감염병이 법정 용어이다. 질병의 생활사 가운데, 환자가 외부 병원체에 의해 감염되는 단계에 초점을 맞춘 용어로, 병원체의 유포와 이동, 감염 모두를 포함하는 전염보다 조건이 더 단순하여 외연 또한 넓다.

* 'WHO가 2020년 봄 마스크 착용을 강하게 권고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사전 예방 원칙에는 어긋나는 조치와 관련해 다음을 참조했다. 남궁석,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BIOS, 2021: 282쪽.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