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경영인의 리더십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본 칼럼은 리더십 개발, 다양한 리더십 유형, 미래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 등 리더십과 관련된 폭넓은 주제를 연재한다. / 편집자주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가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김치의 족보를 캐고 들어가 보면 참으로 기이한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김치의 주재료인 결구배추의 고향은 배추의 조상은 지중해 연안의 잡초성 유채였으나, 이것이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북부(화북) 지방에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결구(속이 차는 성질) 형태의 배추로 개량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치의 붉은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고추는 멕시코에서부터 페루, 볼리비아에 이르는 중남미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나 한반도에 들어온 남미산 귀화 식물이다.

질료적 팩트(Fact)만 놓고 보자면 김치는 남의 나라 재료들의 집합체다. 하지만 우리는 김치를 중국 음식이나 남미 음식이라 부르지 않는다.

물리적인 결합을 넘어 시간과 미생물이 빚어낸 '발효'라는 화학적 마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제3의 생명체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가진 창조의 DNA, '융합의 미학'이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드는 'K-팝'이나 'K-콘텐츠'의 문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구의 팝 사운드와 헐리우드의 장르 문법을 빌려왔지만, 그 안에 한국 특유의 '한(恨)'과'흥(興)' 그리고 따뜻한 '정(情)'이란 서사를 비벼 넣었다.

비틀즈를 듣고 자란 세대가 그 토양 위에 한국적인 씨앗을 뿌려 빌보드 차트 8주 연속 1위라는 거대한 거목들을 키워낸 것이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되, 그것을 씹어 삼켜 내 것으로 소화해내는 위대한 '위장(胃腸)'을 가진 민족, 그것이 바로 우리다.

 

나는 오늘 이 위대한 융합의 역사를 우리 '철도'이야기로 가져오려 한다.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KTX, 그 시작이 프랑스의 떼제베(TGV) 기술이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4년, 고속철도 개통 당시 우리는 후발주자였다. 일본의 신칸센은 이미 1960년대부터 달리고 있었고, 중국은 거대한 자본과 대륙의 스케일로 철도 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샌드위치 신세였다. 프랑스의 기술을 들여오면서 일각에서는 '기술 종속'을 우려했다. 배추가 중국에서 왔으니 중국 김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같았다.

 

하지만 보라.

한국의 철도 기술자들은 프랑스의 도면을 그대로 베끼는 '복사기'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한국의 산악 지형이라는 거친 그릇 안에 프랑스의 기술을 담고, 그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과 운영 노하우라는 양념을 버무렸다. 터널이 많은 한국 지형에 맞춰 공기 저항을 줄이고, 승차감을 개선하고, 정시성을 확보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이전(Transfer)이 아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고추 양념을 만나 숙성되듯, 떼제베의 기술이 한국 엔지니어들의 피땀과 만나 '발효'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동력 집중식의 한계를 넘어 동력 분산식의 KTX-이음으로 진화했고, 이제는 철도 종주국이라 자부하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세계 시장으로 'K-철도'를 수출하고 있다.

일본의 정교함과 중국의 물량 공세 사이에서, 한국은 '가성비'와 '신속한 현지화(Customizing)'라는 독보적인 맛을 낸 것이다. 마치 맵고 톡 쏘는 김치가 느끼한 치즈와 빵 사이에서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은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창조란 서로 다른 것들을 충돌시켜 새로운 가치를 빚어내는 '창조적 편집'과 '융합'에 있다. 우리 철도인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외부의 기술, 타 분야의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말라. 다만, 그것을 단순히 섞는 비빔밥 차원에 머물게 하지 말고, 우리만의 혼과 기술로 푹 삭혀내는 ‘발효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배추가 배추이기를 포기하고 소금에 절여져야 김치가 되듯, 기존의 관성을 버리고 융합의 독에 들어갈 때 혁신은 시작된다. 프랑스의 떼제베가 한국의 산천을 누비며 'K-철도'라는 명품으로 다시 태어났듯, 우리의 철도 산업도 끊임없이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창조적 변용’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일본의 치밀함과 중국의 거대함을 넘어, 우리가 세계 철도 시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궤도이기 때문이다.

섞지 말고 발효하라. 

그것이 K-철도 미래 승리의 비밀 코드이다.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ㆍ경영행정학 박사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ㆍ경영행정학 박사

/ 배재우 스토리월드컨설팅 대표·경영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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